스토리북
part5. 그때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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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대학생들도 교복을 입었다고!
1973년 제1회 입학식 기념 식수 사진을 보면 검은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식수를 하고 있는 듯하지만 이들은
제1회 아주공업초급대학 입학생들이다.
MZ 세대들에게는 낯선 모습인데 1970년대 대학생들은 정말 교복을 입고 다녔다.
대학생들의 교복은 1979년 교복 자율화 방침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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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연구소 못지 않은 초기 실험실
아주공업초급대학 개교 당시 실험실 및 실습실의 장비는 대기업에서도 구비하지 못한 최신 장비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1975년 전자공학과 실습 사진이 초라해 보이지만 개교 당시에는 찬사를 받을 정도의 최신 장비였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들여온 최신의 장비는 학생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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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가 필요했던 진입로
아주대학교의 1970년대 초중반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 중에는
공통된 것이 하나 있다. 개교 당시 학교 진입로가 정비되지 않아 비가 오는 날 이면 장화가 필수품이었다고.
진입로는 1975년 들어서야 포장이 됐다.
사진은 1973년 개교 당시와 1977년 포장공사가 완료된 진입로 모습이다.
1970 ~ 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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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그만! 국기강하식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학생들이 모두 한곳을 바라보며 서 있다.
이들이 바라보는 곳은 바로 국기가 있는 국기게양대이다.
1970년대부터 1989년까지 저녁 6시(동절기 5시)가 되면 사이렌이 울리고, 국기를 내리는 강하식을 진행했다.
이때 국기가 보이는 곳에 있다면 잠깐 멈춰서서 국기를 바라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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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가 아닌 학도호국단?
학도호국단이 1960년에 폐지되었다가 유신체제 하에 다시 설치되었다.
학도호국단이란 학생들의 사상통일과 단체적 훈련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학생자치훈련단체이다.
학도호국단과 학생회가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학도호국단이 1975년부터 10년간 학생회를 대신했었다.
이로 인해 1985년 제4대 학생회가 정식으로 부활할 때까지 학생회는 존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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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이 싫어요?
1970~80년대 반공에 대한 열기가 아주 뜨거웠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풍토는 학교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안보궐기대회로 이어졌다.
물론 아주대학교에서도 안보궐기대회가 개최되었었다. 이러한 반공에 대한 열기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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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부대 입소교육?
대학생이 된 남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병역의무를 언제 보낼 것인가이다.
1970~1980년대의 대학생 1~2학년들은 전방부대 입소교육이란 걸 받았다.
약 일주일간 전방부대에 입소해 교육을 받으면 학점으로 인정받았고, 병역복무기간 단축혜택도 받았다.
물론 그 당시에는 병역복무기간이 지금보다 훨씬 길었다. 이러한 학생군사교육은 1988학년도까지 지속되다가 1989년 2월 28일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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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대자보를 아니?
대자보(大字報)란 ‘대학가에서 내붙이거나 걸어두는 큰 글씨로 쓴 글’을 말한다.
1970~90년대의 대학문화 중 하나가 바로 ‘대자보문화’였다.
학교의 중대 소식을 전파하고 각종 행사를 알리는 것을 넘어 학과 행사 안내, 동아리 홍보 등도 대자보로 이뤄졌었다.
그래서 그때는 글씨 잘 쓰는 친구들이 귀한 대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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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가 필수였을까?
아주대학교는 태생적으로 프랑스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 개교 당시부터 프랑스어가 전교생 대상 필수과목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개교 초기 전국 대학생 불어웅변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불어불문과에서 2007년부터 전국 고등학생 프랑스어 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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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90년대
잔디밭이 Hof
독일어로 호프의 뜻이 ‘마당’이다. 맥주를 즐기기 위해 즐겨찾는 곳을 호프집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즐기고 놀 공간들이 많지만 예전에는 잔디밭이 호프집이었다.
너른 잔디밭에 막걸리, 맥주를 박스채 쌓아두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일상이었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원이 커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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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80년대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 학생운동!
1970~80년대 대학생활을 대표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학생운동’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학생운동에 아주대학교 학생들도 동참했고, 이러한 학생운동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아주대학교 교직원 중에는 경찰서에서 학생들을 인계받아 오신 분들이 꽤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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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형이 대세였던 그때의 축제!
사진은 1977년 추계체전, 1983년 민속제, 횃불제의 모습이다.
아주대학교 초기에는 원천대동제, 횃불제, 민속제, 체육대회 등 다양한 이름으로 축제를 즐겼다.
그 당시의 축제들은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만들어나가는 프로그램들이 많았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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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 1990년대
다목적 공간, 노천극장
중앙도서관 옆에 자리하고 있는 노천극장은 아주대학교 초기부터 아주 유용한 공간으로 활용되던 다목적 공간이었다.
때로는 입학식, 졸업식, 축제 등 학교의 중요 행사들이 노천극장에서 진행되었다.
1983년 인천시립교향악단 초청 연주회가 개최될 정도로 다목적 공간이었던 노천극장은 1975년부터 줄곧 현재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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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통학버스
아주대학교가 소재한 원천동은 ‘멀리 있는 천’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아주대학교는 수원 중심에서 멀리 있던 곳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수원역을 오가는 것도 힘들었던 그 시절,
아주대학교는 수원역과 학교, 서울 등의 주요 거점을 잇는 통학버스를 운영했었다.
한때 통학버스가 22대에 달했다고.
하지만 이후 서울 강남, 사당 등을 오가는 광역버스 노선이 증가하면서 통학버스의 운영은 점차 줄어들었고,
현재는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서 수원역과 광교중앙역을 오가는 통학버스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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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 1990년대
그 시절의 동아리 SNS 계정, ‘날적이’
동아리 방이면 방마다 ‘날적이’라는 게 있었다.
날적이가 뭐냐고? 한마디로 그냥 동아리 공동 일기장, 수첩 같은 거다. 오늘 날로 보면 동아리 SNS 계정 같은 게 아닐까?
동아리 방에 혼자 덩그러니 있자면 날적이가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끄적이다 보면 어느새 일기장이 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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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야? 독서실이야?
시험기간이면 동이 트기 전인 새벽부터 도서관 앞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도서관 열람실의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칸막이로 막혀있는 열람실의 가장 구석 자리를 잡아 놓고 거창하게 공부를 시작해볼 찰나 쏟아지는 잠에 잠깐 눈을 붙이곤 했다.
지금은 모바로 좌석을 예약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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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지구촌을 넘어 글로벌 캠퍼스로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지구촌이라는 말이 떠오르며 세계를 향한 행보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대학 역시 이러한 추세에 동참하며 교환학생 유치에 열을 올렸다.
아주대학교는 설립의 특수성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실질적인 학생교류는 프랑스의 대학이나 기관들과의 교류협약을 통해 아주대학교 학생들만 파견되는 일방적인 모델이었다.
아주대학교 최초의 교환학생 유치는 1997년의 일이다.
프랑스 파리의 전기전자공학대학 학생 2명이 온 것이다.1)
이후 아주대학교에서 수학하고자 하는 외국의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캠퍼스를 누비는 교환학생들의 수가 부쩍 늘어 아주대학교는 글로벌 캠퍼스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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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997년
국내 최초로 예비대학캠프 진행
아주대학교는 대학 최초로 시도한 프로그램들이 꽤 있다.
그중에 하나가 1995년 처음으로 진행한 예비대학캠프이다.
예비대학캠프는 예비 수험생을 초청해 짧은 시간이지만 대학의 강의와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행사이다.
1995년 첫 캠프는 여름방학 기간 중 3일간 250여 명의 예비 수험생을 대상으로 진행했었다.
이 행사는 아쉽게도 IMF로 인해 중단됐으나 호응도가 매우 높은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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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11년
통제를 하고 지역과 함께했던 삼거리 축제
삼거리축제는 1999년 처음 진행한 이후 2011년까지 아주대학교 앞 거리에서 진행되었던 축제다.
축제 기간이 시작되면 현 아주대 정문으로부터, 예전 아주대 정문이 있던 자리, 즉 42번 국도변 아주대삼거리에 이르는 구간을 전면 통제하고 대동제를 진행했다. 그래서 일명 '삼거리 축제'라고도 불렸다.
삼거리축제는 대학교 축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축제라는 면에서 의의가 있었으나 축제기간 거리통제로 수많은 버스 노선이 우회한다는 점,
축제 이후의 뒤처리 문제, 소음으로 인한 민원 등으로 인해 2011년을 끝으로 더 이상 거리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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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선배님들은 모를 축제, International Day!
1997년 처음으로 인터내셔널 데이가 시작되었다. 인터내셔널 데이는 매년 가을(11월)에 텔레토비 동산(가온마당)에서 열리는 축제로 아주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 학생들이 자국의 음식과 문화를 소개하고 한국의 전통놀이를 즐기는 행사이다.
봄에 대동제가 있다면 가을에는 인터내셔널데이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
특히 각국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음식 판매 부스 인기가 좋아서 학생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았다.
처음에는 학교의 유학생들을 위해 개최된 축제였으나 각국의 대사들이 참여하고 축하를 위한 외교사절단까지 파견될 정도로 축제의 들을 위해 개최된 축제였으나 각국의 대사들이 참여하고 축하를 위한 외교사절단까지 파견될 정도로 축제의 규모가 커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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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회관에 터를 잡은 동아리방
200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동아리방과 과방은 도서관 지하에 있었다.
좁은 공간에 동아리방과 과방이 몰려있어 규모가 작은 동아리나 과들은 방 한 개를 나눠 사용하는 기묘한 한집살이가 비일비재했었다.
이런 상황은 2007년 신학생회관이 완공되고 동아리방과 과방이 신학생회관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사라지게 됐다.
요즘 학생들은 햇살이 반겨주는 환한 동아리방과 과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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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휴식공간의 변화, 잔디밭과 벤치에서 카페로!
아주대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전공 구분 없이 학생들이 모여 교양수업을 들을 수 있는 성호관과 도서관일 것이다.
때문에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성호관과 도서관 사이의 잔디밭과 벤치는 학생들의 만남 장소로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2000년대까지 주로 학생들이 잔디밭, 벤치, 도서관의 벽다방(자판기)에서 이야기를 나눴다면
2010년 이후 학생들은 도서관 자료실 1층에 새로 생긴 ‘027라운지(북카페)’와 도서관 앞 휴식공간인 ‘더 테라스’ 에서 모인다. 특히 ‘더 테라스’는 축제 기간 노점이나
부스로 활용되고 시험기간에는 시원한 공기를 맡으며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학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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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중앙(아주대)역 개통
2001년부터 개통 소문만 무성하던 아주대역이 2016년 1월에서야 드디어 완공되었다.
무려 15년 만의 완공이었다.
아주대생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선 주로 학교 앞에서 7000번대나 3000번대 광역버스를 타고 사당, 강남을 거쳐 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경유지가 많고 통행량이 많은 구간을 지나가기 때문에 버스 소요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신분당선 개통 전에는 학교에서 서울로 이동할 때 보통 1시간 30분을 예상했는데 신분당선의 개통으로 40분이면 강남역에 도착하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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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학생식당 맞아?
학생식당하면 식판에 먹는 모습을 떠올리는 선배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이러한 식당도 있지만 아주대학교의 학생식당은 쇼핑몰의 푸드코트와 같다.
2021년에 새롭게 선보인 학생식당은 학생들이 굳이 학교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다양한 브랜드의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환경이 개선되었다.
1) <아주대학교 50년사> 부문사 제6장 국제협력 제3절 국제교류 프로그램의 시작과 발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