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북
part1. 최초의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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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나의 불란서 체험기
아주대학교는 한국 정부와 프랑스 정부가 공동으로 설립한 국제 교류의 상징입니다.
1974년 1월, 아주공대 학생 5인에게 펼쳐진 프랑스에서의 첫 주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들을 가장 괴롭힌 건 부족한 프랑스어 실력으로 인한 자괴감이었다. 그러나 자매결연을 맺은 낭트공과대학에서 지정해준 강사와 거의 매일 대화 형식의 수업을 이어가자, 충분하다고 할 순 없어도 필요할 정도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차 프랑스 대학생들이 누리고 있는 부러운 교육환경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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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공대학보 제5호(1975년 3월 31일) 4면에 수록된 <프랑스에서의 40일> 공업경영학과 3학년 조영호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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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기숙사와 대학 식당이 어느 한 대학에 부속되어 있지 않은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모든 학생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학교와는 별도기관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고,
시내 몇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는 그야말로 대학생들만의 천국과도 같았다.❞가깝게는 정부가 식대의 3분의 2를 지원하는 식당에서, 본인이 낸 돈의 3배에 해당하는 품질 좋은 식사를 제공받는 환경이 부러웠다. 나아가 공동 기숙사와 식당을 통해 학생들이 서로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고 미래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세계적인 교육·과학 강국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천국의 문을 열고 그 비밀의 일단을 훔쳐보는 듯했다.
아주대학교는 그 출범의 사정마저 참 독특한 학교였다. 1965년부터 시작되어 거의 10년에 걸쳐 진행된 한불문화협정의 열매로 출범하게 된 학교였다. 국내 대부분 사립대학이 특정한 설립자와 그가 세운 재단에 근본을 두고 설립됐음을 감안할 때 매우 특이한 사례로, 한국 정부와 프랑스 정부가 공동으로 세운 국제 교류의 상징과도 같은 학교였다.
설립 1주년도 못 채운 경기도 수원의 작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불란서 체험’의 귀중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출범의 연원과 맥이 닿아 있다. 프랑스 정부의 지원 속에 우리 학교는 1973년 10월 낭트공과대학교와 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이듬해 1월과 2월에 걸쳐 학생과 교수요원의 단기연수를 실시했다. 아주대학교 50년 역사에 길이 남은 최초의 불란서 체험 기록이기도 했다.
다시 1974년 1월. 불란서견문록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5명의 학생들은 서서히 귀가 뚫리자 공업 선진국이 고이 간직한 비밀의 실체에 다가서기 위해 빈틈없는 일과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세상은
넓었고, 보고 또 배울 건 많았다. 그들은 아침 8시면 학교에 나와, 어떤 날은 저녁 7시에야 일과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전자와 기계 쪽 현지 학생들의 실험에 직접 참여했는데,
학생 수보다 더 많은 교수진들이 제공하는 세심한 지도와 학생들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약 1년에 걸쳐 진행하는 Bureaux d’Etudes 같은 시스템을 경험하며 일생의 자양분이 될 귀중한 영감을 길어
올릴 수 있었다.
또 산업혁명기부터 발달해 온 낭트 지역 해안의 공장들을 견학하며 선진 공업국가의 우수한 기술력과 시스템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수출입국을 목표로 내달리고 있던 제3세계 국가의 청년들에겐 일생을 뒤바꿀
수도 있는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그러나 초창기 단기연수의 한계는 명확했다. 애초에 프랑스 정부와의 협약에 의해 이뤄진 파견이기에, 주로 방학기간을 이용해 비정기적으로 진행된다는 제한이 있었다. 또 한 번 역사적 변곡점이 찾아온 건
1984년이었다. 이해 9월, 아주대학교는 프랑스 정부를 거치지 않고 낭트대학교와 직접 자매결연 협정을 맺고 비로소 학기 단위의 연수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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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라 학생들은
진짜 공부다운
공부를 하고 있구나!❞-
그 후 매년 3명 정도의 인원이 선발되어 파견되었고,
이 프로그램은 이후 교환학생 제도로 확장되었다.
이에 아주대학교 학생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귀중한 탐색의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나갈 수 있었다.
한국을 출발하여 프랑스에 도착, 자매대학 ENSM (Ecole Nationale Supérieur de Mécanique)과 IUT(Institut Universitaire de
Technologie)가 있는 낭뜨시(Nantes, 인구 26만 5천, 프랑스의 서쪽, 파리에서 394km)에서 프랑스 체재 기간의 거의 전부인 약 4주를 보낸 후 파리를 관광하고 귀국하기까지
꼭 40일의 기간이었다.
우리의 여행 중 이 낭뜨에 머무는 약 4주의 기간은 매일 매일이 미리 짜여진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빈틈없는 일과였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의 인솔교수인 이상혁 교수와 낭뜨공대(ENSM)측
교수가 그때 그때 주별 작성한 것인데 2시간짜리 불어교육이 거의 매일 들어 있었으며, 전자, 기계공 학생들의 실험에 참여하는 것, 또 낭뜨시와 낭뜨시 주변의 공장을 견학하는 것들로 되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어떤 때는 아침 8시에 학교에 나가기도 했고, 또 저녁 7시에야 그날 일과가 끝나 숙소에 돌아오는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에게 충분한 하나의 훈련으로 느껴졌고, 곧
우리는 그러한 각오를 갖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훈련 속에서, 우리는 이것 저것 다소나마 프랑스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우리보다 나은 점은 어떤 것이 있는가 찾기에 바빴다. 그 결과를 출발 전에 내가 세운 목표와 견주어 볼 때 나는
이번 방문에 다소 만족을 느낀다.
낭뜨공대에서는 일행이 방문하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태극기를 게양하여 환영의 뜻을 표했다. - 불어교육담당자와의 한 컷
학생들의 실험에는 6명당 1명의 교수가 산학협동에 바탕을 둔 불의 교육제도
불어를 익히자 프랑스의 대학이 우리의 대학과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보자, 그리고 프랑스의 산업(공장)을 살펴보자는 등의 것이 나의 방문과제였다. 그 중 대학을 알아보자는 것에 대해서는, 처음
예상으로는 몇 개의 대학을 돌아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못하고 ENSM이 우리가 본 대학의 거의 전부였기 때문에, 여러 대학을 비교 대상으로 갖지 못한 아쉬움의 반면에, 이
ENSM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통해 우리 대학과 비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몇가지 점을 발견하였다.
나 개인적인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불어 실력 외 상당한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기회를 얻은 결과로 불어 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어에 대해서까지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체류기간 동안의 가장 큰 난제는 우리의 불어 실력의 미흡으로 인한 의사 소통의 부자유스러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 불어를 익히는 것, 또 한편으론 원하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 이 양면에 똑같이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체재기간이 짧다는 건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이 짧은 기간에 우리가 본 것은 단순한 인상에 불과하며, 속은 못 보고 겉만 보고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없지 않으며, 앞으로 더 많이 프랑스를 알게 될 때 내 자신의 현재의
생각이 얼마나 많이 고쳐져야 할지 의문이다.
나는 이제 막 불어도 늘기 시작하고 그런대로 관심사에 대한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는데, 아쉽게도 떠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었다.
I. 낭뜨에서 훈련
불어교육
불어 훈련은 거의 매일 있었다. 낭뜨공대에서 지정해준 강사와 대개는 교재없이 자유로운 얘기 형식으로 매회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문장 훈련은 거의 있었으며, 당장 필요한 회화훈련이었다는 잇점이
있었다.
실험참여
※학생들의 수업은 일반 강의(Cours)와 연습(T. D; Travaux Dirige), 실험(T. P; Travaux Pratique 혹은 Bureaux d‘Etudes)로 구성되어 있음.
여기서 말하는 실험이란 T. P 또는 Bureaux d’études를 가리킴.
전기전자공학실험(T. P Electricité-Electronique)에 3회, Bureau d’ Etude(de Mecanique)에 3회, 물리실험실(T. P Physique)에 1회,
금속실험(T. P Metrologie)에 1회 참가하였다.
ENSM의 1학년은 우리나라의 3학년에 해당하므로 우리는 주로 ENSM과 한 갬퍼스에 있는 IUT(2년제 초급대학)의 2학년들의 실험에 참가하였다.
T. P에 들어 갔을 때 우선 학생 수에 비해 교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대개 한 실험실에서 18명의 학생이 6개의 1조(1조 3명)로 나뉘어 실험을 하는데 2개조가 같은 주제의 실험을
했다. 그런데 각 주제에 1명의 교수 또는 조교가 있었다. 그러니까 2개조(6명)당 1명의 교수 또는 조교가 있는 것이다.
하나의 Projet를 받아 일정기간 동안(약 1년) 학생들
스스로
설계에서 제조까지 한다는 Bureau d’Etude는 참 좋은 시스템으로 진짜 공부다운 공부를 한다고 생각되었다.
우리가 참가한 기계과 학생들(IUT의 2학년)의 Bureau d’Etude에서는 배의 건조를 위한 부분품들을 만드는 주제를 가지고 조별로 설계를 하고 있었는데 설계실에서 설계하면 학생들이
우리에게 자기들이 앞으로 한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하여 전기테스트실 목형공장, 아뜰리에 등을 차례로 보여 주는데 특히 배의 건조를 위한 아뜰리에가 잘되어 있다는데에 놀랐다. 거기에는 수많은
배의 모형들이 있었으며, 복원력실험기, 수력학 실험설비 등의 많은 설비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실제 크기의 배도 있었다. Bureau d’Etude에도 많은 교수들이 있었다.
강의참여
실험실 외에 학생들의 강의로는 Formation Générale (IUT 1학년)과 경영학과(IUT)에서 실시하는 Expression에 참가하였다.
Formation Générale 시간에는 15명 정도의 학생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강의를 받고 있었는데 우리가 참가했을 때의 강의 내용은 이력서 쓰는 법, 입사원서 쓰는 법, 전화거는 법
등이었다.
IUT의 경영학과(Department de Gestion des Entreprises et Administration)에서 실시하는 Expression 강의에 참가했을 때, 우선 VTR을 할 수
있는 교실 설비가 눈에 띄었다. TV와 영사실이 갖추어져 있었다. 약 20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반으로 나누어 마주볼 수 있도록 좌석배치가 되어 있었다. 다른 과에 비해 유독 여학생이
많았다. 교실의 반을 여학생이 차지하고 있었다.
견학
1.학교
낭뜨공대(ENSM) 외에 우리가 본 유일한 학교로서 St Nazaire(낭뜨에서 61km)의 IUT가 있다. 이 IUT(1970년 설립, 학생수 484명)에는 Mesures Physiques,
Techniques de Commercialization Génie Civil(Bâtiment et Travaux Publics), Génie Chimique의 4개의 과가 있는데 우리가 본
교육시설로 판단해볼 때 Génie Chimique쪽에 약간 치우쳐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낭뜨공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공제도실, 유체역학실험실, 냉동실험장치 등을 볼 수 있었다.
2. 공장
낭뜨시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에는 해안에 연해 있다는 지리적 장점 때문에 조선, 제과, 제당, 통조림 등의 공장이 일찍부터 발달하였으며, 지금도 이러한 류의 공장이 산업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다. 특히 조선공업은 역사적으로 세계적이며, 1945년 전까진 세계 최대의 유조선을 건조할 정도로 규모에 있어서도 세계적이라 한다. 나머지 제과, 제당, 통조림 등의 공장도 이 조선공업의
발달에 힘입었거나, 조선공업을 돕는 측면에서 수출산업으로 성장하였다 한다.
①Chantiers de l’Atlantique(조선공장)
조선공장으로서는 성나제르(St. Nazaire)시에있는 Chantiers de l’Atlantique를 보았다. 이
Chantiers 선체 건조부분과 엔진제조 부분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있었는데 그 중 엔진제조부분의 공장만을 보았다.
한달 약 25개의 디젤엔진을 생산하며 그중 60%는 수출한다고 한다. 선박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철도회사에서도 주문이 들어와 기차엔진도 제조한다 한다.
여기서 제조하는 엔진으로서는 BC 4엔진, PAU엔진 등이 있다. Chantiers de l’Atlantique는 큰 규모의 자체 내 연구소를 갖고 있으며, 그 연구소의 연구활동이 활발하여
세계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특허 엔진의 55% 정도가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이라 한다.
②Biscuiterie Nantaise(비스켓 제조공장)
밀가루, 설탕 등의 원료가 저장되어 있는 저장소로부터 완제품인 비스켓이 되어 포장될 때까지 라인을 따라 거의 오토매틱으로 작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 라인을 따라가며 제조과정을 하나 하나 볼 수가 있었다.
특히 새로 설치한 신식설비와 과거부터 사용해 오던 구식설비가 한 장소에 설치되어 있어 좋은 비교가 되었다. 비스켓이 컨베어로 운반되면서 냉각과정을 거쳐 크림을 사이에 넣은 샌드위치 비스켓이 되어
포장될 때까지의 작업을 수행하는 설비였다. Biscuiterie Nantaise에서는 점점 신설비로 대체시켜 나가는 도중에 있다고 하는데 시설의 거의 절반이 현대화된 현재, 그 시설 투자가 많긴
하였지만은 덕분에 구설비만 있을 때의 불량률 9%에서 4.5%로 불량률이 감소되었다 한다.
③SERCEL(지질학연구기재 생산공장)
Société d’Etudes Recherches et Constructions Electroniques는 지질학(특히 석유탐사) 연구기관의 실험기재, 또는 선박은행(배 위치 결정)에 필요한
정밀기계를 생산하는 프랑스 유일의 기업으로서, 미국 텍사스와 영국에 각각 하나의 경쟁회사가 있을 뿐인 특수계기 생산업체였다.
여기서는 종업원의 노동시간 통제에 관한 새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특히, 매일 매일의 작업자 노동시간이 체크되는 것이 아니라 한 주일을 단위로 노동시간이 체크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노동자는 하루에 8시간의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40시간의 노동을 하면 되는데 매일의 출퇴근 시간을 작업자가 임의로 조정하여(그러나 한계 내에서) 일주일의 노동을 조금 일찍
끝마치고 긴주말을 가질 수도 있다고 한다. 노동시간의 체크는 각 작업대열에 연결된 전자 장치에 의해 자동으로 행해진다고 한다.
④HUARD
HUARD~ Machines Agricoles(농기구 생산공장) 저장된 강봉을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그 자른 강봉을 가열하여 여러 단계로 압축, 쟁기, 보습 등의 농기구를 만드는 과정을 보았다.
HUARD~ Fonderie 목형제조에서 주형제조를 거쳐 주물을 만드는 과정을 견학하였다. 쇳물을 녹이는 거대한 설비에 놀랐다.
⑤LMT(전화교환대 생산업체)
Le Materiel Téléphonique에서는 전화교환대를 만드는 복잡한 회로연결 작업이 많은 여공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회로연결 작업은 복잡하고 세밀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컴퓨터에 의해 지시가 돼 작업자는 실제의 작업 내용은 전혀 모르고, 컴퓨터의 지시에만 따르고 있는 격이다.
미국의 ITT 자회사라 한다.
3. 연구소
CETIM
le Centre Technique Des Industries Mecaniques는 프랑스의 기계공업 분야에 기술적 지원을 하는 연구소로서 이곳 낭뜨연구소를 포함하여 프랑스 전체에 3개가 있다
한다.
낭뜨의 CETIM에서는 프랑스의 서부해안 지역의 기계공장에 대해 서비스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정밀기계실험실, 공물분석실험실, 열처리실험실, 표면처리실험실, 수력학실험실 등의 실험연구실과 자료실이 있는데 그 중 무엇보다도 수력학 실험실 설비는 거의 완벽하여 세계적이라 한다.
조선공업이 중심을 이루는 이 지방연구소의 특징이라 하겠다.
Ⅱ. 낭뜨공과대학에서 본 것
본 대학과 1973년도에 자매결연을 맺은 낭뜨공과대학의 원명은 Ecole Nationale Supérieur de Mecanique(ENSM)로서 프랑스 유일의 기계공과 대학이며,
Université de Nantes의 한 대학이기도 하다. (본지 3호 3면 낭뜨공대 소개 참조)
ENSM은 3년제 대학이지만 ENSM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3년의 준비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5~6년제의 구실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ENSM은 1학년에 140명을 모집하며 2학년의 중간쯤에서 다음의 6개 전공(Section)으로 나눈다.
- Constructions Mécaniques et génie civil
- Constructions Mécaniques et automatique
- Constructions Mécaniques et informatique
- Constructions Mécaniques et Physique des
Matériaux
- C onstructions Mécaniques et navales et Section
spéciale d’Hydrodynamique naval av ancée
- Conception et fabrication mécanique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낭뜨공과대학의 체재는 미국 또는 일본의 교육제도를 모방한 우리나라의 대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대학과 낭뜨공과대학을 직접 비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한편으론 양국의 제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몇가지 인상적인 특징을 참고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
ENSM의 프로그램을 보면 우리나라에서의 교양과목이라고 일컫는 국어, 철학(윤리), 역사 등의 문과적 과목이 전혀 없고, 1학년부터 수학, 물리 등 이학과목과 전공과목(공학과목)에 집중되어
명실공히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대학이라는 인상을 얻는다. 우리나라의 교양과정에 비유될 수 있는 입학하기 전 2년 동안의 준비과정에도 국어(불어)를 제외한 앞서 말한 문과적 교양과목이 없다 한다.
이공학 과목이 아닌 과목으로는 외국어와 기업 또는 경영에 관계되는 과목뿐이다. 1학년의 경우 이화학과목과 공학과목을 제외하면 외국어(영어 또는 독어)와 Formation Générale 뿐이다.
2학년에는 외국어(영어 또는 독어)와 Connaissance du monde industriel이 있다.
또 3학년에는 전공에 관계없이 공통과목으로 영어 또는 독어, 러시아어, Droit Social, Gestion des entre prises privées etéconomie d’entre
prises, Analyes de lavaleur 등의 경제학 또는 경영학에 관련되는 과목이 있다.
ENSM에 들어오기 전에 2년 동안의 준비과정에서 수학, 물리 등에 대해 많은 시간동안 공부를 하기 때문에 실제로 ENSM의 학생은 기초 과학에 대한 지식은 대단하리라 생각된다.
한 학년의 수업시간 수는 강의와 실험을 합하여 1학년 약 1천 25시간, 2학년 약 960시간, 3학년 1천 72시간(공장 실습 포함), 공장실습으로는 1학년 말에 15일간의 노무자 실습이
있으며, 3학년(최종학년) 초에 2개월간의 실습이 있다.
학생의 도태
1학년 140명 모집에서, 2학년엔 약 130명, 3학년엔 125명 정도로 학생수가 준다고 한다. 성적불량 등의 이유로 제적되어 수가 줄기는 하지만 그 수는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나 ENSM과
같은 캠퍼스에 있는 2년제는 초급대학(준비과정 없이 입학)의 경우 성적불량의 학생제적 현상이 심하여 그 수는 전체 학생의 10% 정도 라고 한다.
학생활동
각종 운동부, 사진부, 영화부 등 뚜렷한 전문적(또는 기술적) 활동을 목표로 갖는 써클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아주대학에는 이에 비해 이러한 전문적 활동이 활동목표가 아니라
봉사 친선을 목적으로 하는 써클이 많다고 생각된다.
학생회의 조직면에서도 우리 학교와는 달리 총학생회와는 별개의 기구로 독립된 수평적 조직을 갖고 있었다.
우리 학교 써클도 앞으로는 다소 그 형태를 바꾸고 각 써클이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야 할줄 안다.
학생의 학교운영 참여
교수, 사회인사(산업계 인사) 등으로 구성되며, 학교운영에 자문 역할을 하는 학교운영 자문위원회(Conseil d’ Administration)에 학생으로 참가하여 다른 구성원과 동등한 발언권을
갖는다고 한다. 여기에 참가하는 학생은 5명인데 학생회임원과는 별도로 학생들이 직접 선출한다고 한다.
Ⅲ. 기타 프랑스에서 느낀 여러 가지
교육제도면에서
프랑스의 교육제도는 너무 복잡한 것 같다. DEP, CFP, DUT, DEA, Diplômed’Ingéniuer 등 많은
Diplôme(학위)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 중 특히 우리나라에는 없는 Grandes Écoles과
IUT에 관심이 쏠렸다. 이것들이 프랑스 교육제도의 특징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Grandes Écoles은 2년간의 준비과정을 갖는 3년제 특수대학인데 범주상으로
École d’ Administration(ENA), École Commercial(HEC), École du professeur(ENS maths, Physique, Lettres 등),
École d’Ingénieur(ENSI) 등으로 구별되는 자체가 어떤 학문상의 구분이 아니라 사회의 직업과 연결되는 것이어서 그 설립목적이 지극히 사회의 목적에 부응되는 것이며 사회에 나가서
곧 일할 수 있는 일군을 기른다는 인상을 준다.
미국의 제도를 그대로 도입한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의 요청에 부응해서 교육제도가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별로 주지 않으며, 또한 대학이 사회의
직업과
비교해볼 때 너무 종합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회와 교육기관이 거리 없이 서로 밀착하여 일정한 목적 하에서 상호 노력하는 보다 큰 의미에서의 산학협동이 자리잡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ENSI란 엔지니어를 기르는 대학의 총칭이며, ENSM은 이의 하나로서 기계공과대학이다. 지방에 설립된 ENSI는 보통 ENSM처럼 그 지방의 산업적 특색에 맞게 ENS de Chimique,
ENS de mines 등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더라도 위에서 말한 교육제도의 특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산업계의 주창에 의해서 근래에 만들어진 2년제 초급대학 IUT도 이러한 프랑스 교육사상의 산물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아주공과대학도 애초 프랑스측에서는 이 IUT와 같은 학교로 만들려고 의도했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아는 사실이다.
대학기숙사와 대학식당
대학기숙사(Residences Universitaires)나 대학식당(Restaurant Universitaire)이 어느 한 대학에 부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학교와는 별도 기관에 의해 운영되며 시내 몇곳에 설치돼 있어 대학생들만의 천국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프랑스의 대학은 몇 개의 종교학교를 제외하고는 전부 국립이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가 쉽사리 마련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대학 기숙사와 대학식당을 통하여 많은 학생들이 상호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큰 특권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고, 나에게는 커다란 부러움이었다.
또한 이곳에 대해서 정부에서 많은 보조를 해주기 때문에 학생들 개인의 부담은 별로 없었다. 대학식당에서는 자기가 낸 돈의 3배 가치의 식사를 한다는 것이다.(2/3 정부 부담)
낭뜨에는 총 1,739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5개 남자 기숙사와 총 1,055명을 수용할 수 있는 3개의 여자 기숙사가 있고 별도로 3개의 대학식당이 있었다.
기숙사에는 한 사람이 한 개의
방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방내에는 침대, 옷장, 책장, 세면대가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욕실, 취사장, 공부방, TV실, 피아노실, 독서실, 체육실 등이 한 기숙사에 준비되어 있었다.
(이하 생략)